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산 왕조 (문단 편집) === 보병(Paighan) === [[파일:external/s18.postimg.org/parth2.jpg]] 아르사케스 왕조 파르티아가 중장기병을 보조하기 위해 다수의 경무장 궁기병을 동원했다면, 사산 왕조는 기병의 부족을 만회하거나 보조하기 위해 다수의 보병을 동원했다. 보병의 지휘관은 '''파야간 사라르'''(Payyagan Salar)로 불렸다. 보병은 다시 궁병과 창병, 기타 용병들로 나뉜다. 대다수의 창병들은 임시로 징집된 농민이나 하층민으로써, 가죽 모자나 조잡한 투구, 고리버들이나 나무, 가죽 따위로 만든 커다란 직사각형 방패 외에는 별다른 방어구가 없었다. 이들은 주로 진지 수비나 공사, 기병대의 보조나 시중, 전장 정리 등 각종 잡일에 동원되었다. 물론 필요할 경우 전면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화살받이 이상의 역할이 기대되지는 않았다. 단 공성전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보병의 역할이 중요했으며, 대오를 갖추어 이동했다는 기록 등을 보면 보병들도 어느 정도의 훈련은 받은 것 같다. 궁병들의 경우 최소한 활은 쏠 줄 알아야 하니 창병들보다는 취급이 나았던 것으로 보인다. 《탁티카》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궁병들은 활의 정확한 조준보다는 빠른 연사능력을 더 중시했다. 로마와 비슷한 중장보병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이란 역시 근접전을 위한 보병들을 자주 동원했지만, 이는 상술한 경무장 궁기병들과 마찬가지로 농민 징집병이나 용병 혹은 소수민족, 동맹국, 속국 병력들이었다. 주로 데일람(카스피 해 연안의 이란 북부 산악지역), [[쿠르드]], 소그드, [[아르메니아]], [[아랍]] 등에서 보병이 동원되었는데, 이들 중 특히 데일람 병사들이 투창과 칼을 잘 쓰기로 유명했으며 이후 [[이슬람]] 시대에도 용병으로 활약했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에 따르면 "철갑을 입은 기병과 보병"이라거나 "보병들은 검투사(murmillo)들처럼 차려입었고..." 등 보병들이 갑옷을 입고 있는 듯한 묘사들이 있는데, 더 이상의 정보가 없어서 이 병사들의 정확한 정체나 성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른 기록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성벽 위에 늘어서 있었다는 묘사도 있으나, 사실 사산조에서는 중무장 궁병에 대한 기록들이 자주 보이고(당연하겠지만 기병과는 별개다.) 거기다 고대~중세 시절은 개인이 직접 장비를 구비해야 했기에 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갑옷을 입은 보병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당장 이웃에 있던 중보병 강국인 로마도 무장은 대체적으로 병사의 자비로 구했다.) 즉, 엄청 중무장을 했다고 무조건 이를 보병이 아닌 기병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말이 안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